뜨거운 태양 아래 끝없이 펼쳐진 모래 언덕을 지나다 보면,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푸른 숲이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아랍에미리트(UAE)의 해안가를 따라 걷다 마주하게 되는 맹그로브 숲은 이 척박한 땅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이질적이면서도 경이로운 장면 중 하나죠. 2026년 4월의 공기는 이미 한낮의 열기를 머금고 있지만, 물가에 뿌리를 내린 이 나무들 곁에 서면 잠시나마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듭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제가 본 맹그로브는 우리가 흔히 아는 울창한 숲의 이미지와는 조금 달랐습니다. 찰랑이는 바닷물 속에 발을 담그고, 가느다란 뿌리를 수면 위로 치켜든 모습이 마치 무언가를 간절히 붙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소금기 가득한 바닷물 속에서, 그리고 타는 듯한 사막의 열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그들만의 생존 방식이겠죠.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낯설지 않게 다가옵니다.
척박한 환경을 견디는 맹그로브의 생존법
맹그로브는 일반적인 나무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습니다. 보통의 식물이라면 말라 죽었을 염분 높은 바닷물 속에서도 당당히 군락을 이룹니다. 이들은 잎사귀를 통해 염분을 배출하거나, 뿌리에서부터 소금기를 걸러내는 정교한 필터링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고 해요. 생존을 위해 몸의 구조 자체를 환경에 맞춘 셈입니다.
해안가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수면 위로 삐죽삐죽 솟아오른 기근(숨뿌리)들을 볼 수 있습니다. 진흙 속에는 산소가 부족하기 때문에, 뿌리를 밖으로 내어 숨을 쉬는 것이죠. 이 치열한 생존의 흔적들을 관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제 자신의 처지를 투영하게 됩니다. 중동이라는 낯선 땅, 모래바람이 일상인 사막 도시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저의 모습과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염분을 걸러내고 숨을 쉬기 위해 뿌리를 뒤트는 맹그로브의 모습은,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는 우리의 일상과 묘하게 겹쳐 보입니다. 가끔은 사막 한가운데 던져진 것 같은 고립감을 느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바다 위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이 나무들이 묘한 위로를 건네주곤 합니다. 너도 그렇게 애쓰고 있구나, 하는 동질감 같은 것이죠.
사막과 바다 경계에서 느끼는 묘한 서글픔
해 질 녘 맹그로브 숲을 바라보고 있으면 가슴 한구석이 조금 서글퍼질 때가 있습니다. 나무는 땅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가는 게 순리라는데, 이들은 살기 위해 바닷물에 몸을 적시고 뿌리를 거꾸로 들어 올리고 있으니까요. 마치 고국을 떠나 이 뜨거운 사막 현장에서 가족을 생각하며 땀 흘리는 우리네 삶의 무게가 그 가느다란 뿌리에 실려 있는 것만 같습니다.
생존이라는 단어는 때로 참 무겁게 다가옵니다. 특히 이곳 르와이스나 아부다비 외곽의 현장에서 근무하다 보면, 내가 가진 본연의 모습보다는 환경에 맞춰진 'PM'으로서의 모습만 남는 것 같아 공허해질 때가 있거든요. 맹그로브가 소금기를 뱉어내며 푸른 잎을 유지하듯, 저 역시 삭막한 업무와 더위 속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쓰지만 그 과정이 늘 매끄럽지는 않습니다. 오늘 이 시간도 더 뱉어내야 할 것들이 있는지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서글픔이 저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도 합니다. 맹그로브가 만들어낸 그 작은 그늘 아래로 작은 물고기들이 모여들고, 새들이 둥지를 트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치열한 생존이 누군가에게는 쉼터가 되고, 내가 버텨낸 시간이 가족에게는 단단한 울타리가 된다는 사실을 나무를 보며 새삼 깨닫게 됩니다. 서글픔 끝에 찾아오는 이 담담한 인정은 사막 생활을 버티게 하는 아주 중요한 근육이 되어줍니다.
루틴이 주는 안정감과 적응의 시간들
처음 UAE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모든 것이 불편했습니다. 숨이 턱 막히는 습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모래벌판, 그리고 단조로운 일과까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환경에도 나름의 리듬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맹그로브 숲도 밀물과 썰물의 시간에 맞춰 자신을 내어주고 다시 채우는 과정을 반복하더군요.
저 역시 저만의 루틴을 만들며 이곳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새벽 일찍 현장을 점검하고, 퇴근 후에는 단지 내 룰루마트에서 소소한 장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상 말이죠. 처음엔 이 단조로움이 답답한 고립처럼 느껴졌지만, 이제는 오히려 이 단순한 반복이 마음을 평온하게 해줍니다. 외부의 자극이 적으니 오히려 내면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 셈입니다.
단순한 일상의 반복은 사막이라는 거대한 불확실성 속에서 나를 지탱해주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맹그로브가 매일 같은 자리에서 조수의 변화를 받아내듯, 저도 매일 주어진 업무와 생활을 묵묵히 해 나갑니다. 화려하진 않아도 변함없는 그 모습이 결국은 숲을 이루고 생태계를 지켜내는 힘이 된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함께 버티는 이들이 있기에 가능한 기록
혼자라면 아마 진작에 지쳐 떨어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맹그로브가 혼자 자라지 않고 거대한 군락을 이루어 서로의 뿌리를 엉키며 파도를 견디듯, 이곳 현장에도 함께 땀 흘리는 동료들이 있습니다. 퇴근길에 마주치는 다른 가족들의 평화로운 산책 모습이나,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나누는 소소한 농담들이 사막의 건조함을 조금씩 적셔줍니다.
가끔은 기록해두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뜨거운 나라에서 내가 어떤 마음으로 나무를 바라봤는지, 그리고 그 나무를 보며 어떻게 다시 마음을 다잡았는지 말이죠. 훗날 시간이 흘러 지금 이 시절을 떠올린다면, 서글펐던 감정마저도 성장을 위한 귀한 거름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맹그로브 숲의 푸르름이 사실은 가장 가혹한 환경에서 피워낸 꽃이라는 사실처럼 말입니다.
혹시 지금 삶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지거나 낯선 환경에서 고군분투하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바다 위에서 숨을 쉬기 위해 뿌리를 높이 든 맹그로브를 떠올려보셨으면 합니다. 당신이 지금 애쓰고 있는 그 모습은 결코 초라한 것이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생존의 방식일지도 모르니까요.
오늘도 사막의 바람은 뜨겁고 바닷물은 짭조름하지만, 제 마음속의 맹그로브는 조금 더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 듯합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담담하게, 이 푸른 생명력을 닮은 하루를 살아보려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UAE에서 맹그로브 숲을 직접 볼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요? A. 아부다비의 '주발 맹그로브 파크(Jubail Mangrove Park)'가 가장 대표적입니다.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 나무들을 가까이서 관찰하기 좋고, 카약 체험도 가능해 자연의 생명력을 직접 체감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입니다.
Q. 맹그로브 나무가 소금물을 어떻게 견디는지 궁금합니다. A. 맹그로브는 놀라운 여과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뿌리에서 소금기를 90% 이상 걸러내고 흡수하거나, 잎에 있는 염분선을 통해 과도한 소금을 배출하기도 합니다. 덕분에 다른 식물이 살지 못하는 환경에서도 독자적인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Q. 사막 국가에서 맹그로브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맹그로브는 탄소 흡수 능력이 매우 뛰어나 '블루 카본'의 핵심으로 불립니다. 또한 해안 침식을 막아주고 다양한 해양 생물의 산란처 역할을 하기 때문에, UAE 정부에서도 환경 보호 차원에서 대규모 식재 사업을 진행할 만큼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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